2021. 12. 18. 23:44ㆍ드라마
종교 소재는 정말 아는 것도 없고 관심도 없고 안볼까 하다가 초반에 느리게 빌딩하다가 후반에 몰아친다는 리뷰를 보고 보게 되었다. 그래서 초반부는 어느정도 지루할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재밌었다. 매 화마다 엔딩을 너무 흥미진진하게 마무리지어서 계속 다음편까지 보게 되었다.
나 역시 무신론자라서 무신론자로 나오는 라일리의 대사들에 많은 공감을 하면서 봤다. 특히 2화에서 신이라는 전능한 존재가 정말 존재한다면 이 세상이 이럴수는 없다고 항변하는 장면과 에린에게 자신이 죽고나면 어떻게 될지에 대해 말하는 대사가 좋았다. 원래 이 감독 작품들이 다 한템포의 대사가 모놀로그마냥 굉장히 길고는 했던것 같은데 이 드라마에서 그런 점이 유달리 도드러졌던것 같다.
사후세계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 죽음 뒤는 없다. 그냥 공허고 그냥 끝이다. 그런데 라일리가 자신의 죽음을 묘사하던 말은 너무나 아름다웠고 내가 죽더라도 나의 원자가 세상의 모든 것에 스며들어 순환할거라는 말도 어쩐지 위안이 되었다.
라일리의 가장 대척점에 있는 캐릭터는 베브 킨이다. 일반적으로 묘사되던 광신도 캐릭터들보다 베브 킨은 이성적으로 보이며 침착하고 엄청난 달변가에다가 카리스마까지 있다. 명확한 원칙과 자신의 신념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베브 킨같은 사람에게 얼마든지 휘둘릴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비상식적인 일이 일어나도 베브 킨은 흔들림없이 그 방대한 성경 아카이브에서 자기 입맛대로 끼워맞추기 좋은 구절들만 골라 주크박스처럼 끊임없이 쏟아내는데 넘어가지 않을수가 없다.
이 섬마을의 주민이 두명 빼고 몰살당한다는 비극 역시 저 특정종교 특유의 독선으로 모든 상황을 종교적으로, 자기 좋을대로 해석한데에서 출발한게 아닌가 싶다.
몬시뇰을 죽이고 살린 존재는 누가 봐도 흡혈귀다. 근데 그걸 지 맘대로 천사라고 해석하고 이 섬마을까지 끌고 왔다가 이 사단이 난게 아닌가.
에린의 집이 불타기 시작했을때 베브 킨은 불바다가 되지 않게 불을 꺼야한다는 상식적인 결론이 아닌 섬마을을 불태우는게 새로운 종말이고 성당이 방주가 되어야한다는 그놈의 종교적인 관점으로 결론내린 덕에 베브 킨마저 햇빛에 타죽어버린게 아닌가.
게다가 작중에서 보안관이 지적했다시피 그 성경이란건 수천년 전에 쓰여져 수많은 사람들의 간섭이 들어간 글인데 2021년에 어떤 "옳음"에 대한 잣대로 성경을 발췌해 근거로 쓰는 행위는 작품 안팎을 통틀어서 황당하고 어이없기만 하다.
그런 맹목적인 신앙에 휘둘리지 않은 최후의 생존자들은 아이들을 살리기위해 자신들을 희생한다. 그리고 주민 중 한명이나 천사(...)가 육지에 닿아 세상을 초토화시키는걸 막으려고 목숨을 내던진다. 작중에서 나온 것처럼 "본적도 없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한 죽음". 광신도들의 집단자살같은 소재를 다루면서도 어쩐지 이 작품에서 따뜻한 시선이 느껴지는건 이 때문일 것이다.
또 좋았던 장면은 섬마을 배경이라 바다가 원없이 나온다는 것이다. 바다 한가운데에 작은 배를 타고 일출을 보던 장면이 너무 낭만적이고 아름다워서 살면서 한번쯤 해보고싶은 리스트가 되었다.(같이 있던 일행이 불타죽는건 빼고)
리자가 조 콜리에게 화를 내던 장면의 대사도 좋았다. 당신은 내가 갖지 못한 것조차 빼앗았다고. 시간을 뛰어넘어서 내게서 훔쳐갔다고.
이 감독의 작품마다 기억에 강하게 새겨지는 대사가 하나씩은 남는 것 같다.
어쨌든 생각보다 호러부분은 정말 약하다. 굳이 강도를 따지자면 힐하우스>어둠속의 미사>블레어 저택의 유령이다. 블레어 저택은 작중에서 나온것처럼 호러보다는 사랑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있기도 하고.
여담으로 이번에야 알았는데 감독 마이크 플래니건과 그의 작품마다 꼭 등장하는 배우 케이트 시겔은 부부 사이였다. 내가 이 감독의 작품 중에 처음 본건 내가 정말 손꼽히게 좋아하는 공포영화인 오큘러스였는데, 나중에 힐하우스를 본 뒤 오큘러스랑 비슷한 느낌이라고 좋아했더니 같은 감독이더라.
오큘러스, 허쉬, 위자, 제럴드의 게임, 힐하우스, 블라이 저택, 어둠속의 미사가 내가 본 이 감독의 필모인데 이 감독꺼인지도 모르고 봤다가 어째 힐하우스랑 캐스트가 겁나 겹친다 하면 이 감독꺼고 그래서 웃겼다. 정말 이렇게까지 배우 돌려쓰기를 좋아하는 감독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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