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메이즈 테일

2021. 11. 26. 23:57드라마

너무 잘만들었다. 전세계 교육과정에 의무시청자료로 넣고 싶다.

현재와 어떻게 이 미친싸이코 길리어드 정권이 들어서게 되었는지 과거가 교차편집되는데, 천천히 뜨거워지는 물에 삶아죽어가는듯한 묘사에 경각심이 들었다. 드라마 속 디스토피아와 현실의 닮은 면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극 내에서 시녀들은 배정받은 가정의 가부장의 이름을 따 그의 소유물이라는 의미로 "of 가부장이름"으로 불리는데, 그래서 준이 오브프레드로 불리는 것이 비인격적으로 보이는만큼 세레나가 미세스 워터퍼드로 불리는것 역시 새삼스레 아주 이상하게 느껴졌다.
두 여자가 프레드 워터퍼드라는 한 남자의 이름으로 불리우며 정작 그들의 본래 이름은 지워진다는게,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길리어드 정권도 어떻게 저런 미친 시스템이 있을수 있나 싶은데 잘 보면 기묘하게 합리화할만하게 설계되어있는 것도 정말 소름끼친다. 준만 해도 불륜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시녀가 아닌 경제계층으로 배정받았을거라고 한다. 그러니까 시녀가 되는 여자들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시녀가 되는 봉사로 죄를 사해야한다는 합리화할만한 명분이 있는거다. 

중세시대로 돌아간듯한 생활상의 개혁으로 탄소배출량을 급감시켰다는 것도 길리어드가 옳다고 합리화하기 아주 좋은 명분 중 하나다. 그런데 나도 환경오염을 되돌이키려면 에코백 좀 쓰고 분리수거 좀 하는 수준으로는 전혀 개선이 안되고 천 하나도 재활용하던 산업혁명 이전의 생활상으로 역행해야 가능한게 아닐까 생각해오기는 했다. 환경오염이 극심하고 출생률이 바닥을 찍은 핸드메이즈테일 세계관에서 근본주의 길리어드가 힘을 얻은게 이해가 되는 설정이다. 
길리어드 개국공신이면서 여자라고 글도 못읽는 세상에서 살아야하는 세레나가 길리어드의 탄소배출 감량 업적을 추켜세우고 지휘관 로렌스가 환경을 위해 뭐라도 한 자신이 준보다 더 준의 딸을 위한 세상을 만든 사람이라고 일갈하던 장면 등에선 그런 또라이같은 사고방식이 돌아가게 된 논리가 보여서 더 암담했던것 같다. 

어쨌든 가임기 여성을 출산을 위한 가축으로 착취하는 설정 자체도 충격이지만 강간과 출산 장면에서 시녀가 성기나 자궁이라는 신체적 기관 그 자체인듯이 부인의 가랑이 사이에다가 시녀를 끼워버리는 연출은 정말 역겨우면서도 강렬했다. 

아무튼 하필 너무나 웰메이드인 왓치맨이랑 핸드메이즈테일을 연달아봐서 한동안 다른 드라마는 눈에도 안차는거 아닌가 했다.
영상미도 아름답고 여자들이 연대해가는 장면도 정말 눈물난다. 특히 서로를 믿을수 없었던 시녀들이 자신들의 진짜 이름을 서로 속삭이는 장면이 너무 기억에 남는다.
거기다가 엘리자베스 모스가 이 작품으로 에미상을 쓸었다더니 과연 연기 너무 잘한다. 어떻게 저렇게 순종과 복종과 반항이 얼굴에 휙휙 지나가는걸까. 
사람의 생존욕구는 본능인건데 시즌 후반부의 준은 너무 가혹한 일들을 겪은 나머지 자신의 생존욕구라는 그 기본적인 본능이 사라진 사람같았다. 어쩌면 그것이 난세의 리더가 가져야할 덕목일지도 모르겠지만.

원작은 시즌1 내용까지만 있다던데 그래서 그런지 확실히 시즌3~4는 좀 질질 끄는 느낌이긴 했다. 그래도 준이 드디어 길리어드에서 벗어나서 좀 숨통이 트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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