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2. 3. 23:05ㆍ영화
가해자정당화란 의견도 있고 프로모션때 배우들이 낸시 캐리건을 조롱하는 sns글을 올려서 어그로를 끌었댔나 뭐 그런 잡음들이 있었던걸로 기억해서 오랫동안 볼까말까했던 영화인데... 어쨌든 영화 자체는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영화 내용을 "팩트"라고 치면 토냐는 낸시 캐리건 폭행사건에서 가해자보단 남자 잘못만나서 덩달아 자기 커리어까지 망쳐버린 피해자에 가깝던데... 근데 내가 실제 이 사건이나 인과관계에 대해 잘 아는것도 아니라서 뭐가 진실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근데 늘 진실이란건 그렇다고 생각한다...대법관같은 사람이 명료하게 이게 "진실"이다라고 땅땅 해주는 경우는 없다. 명백한 증거가 없는 상황이라면 사람마다 입장마다 말이 다르니 뭐가 진실인지 알려면 최대한 모든 정보를 다 섭렵한뒤 알아서 판단하는 수밖에 없다. 근데 누가 남의 일에 그 정도로까지 관심이 있어서 정성스레 시간 쏟아가며 찾아보겠냐고? 걍 스피커 큰 사람이 이쪽이 진실이다 해버리면 그런가보다 하는거지...
어쨌든 완전히 영화에만 근거해서 말해보자면, 어머니에게 학대당하고 남편에게 학대당하는 토냐의 인생이 너무 비참했다. 마고로비는 어쩜 이렇게 학대당하는 울분을 쌓아누르면서도 사랑받고 싶어하는 연기를 잘하는 것인가...
제프랑 션은 진짜 끔찍했다. 어느정도 영화적 msg가 첨가된게 아닐까 했더니 엔딩크래딧에 나오는 실제인물들의 인터뷰나 영상보니까 그냥 실제인물부터 그렇게 끔찍하고 허구적일 정도로 멍청한 인간들이었던듯 하다.
세바스챈 스탠은 어째 보는 필모마다 조패서 죽여버리고싶은 캐릭터로만 나오는데... 이 영화에선 콧수염만 빼면 비쥬얼도 나쁘지 않았는데도 제프라는 인물이 너무 죽여버리고싶은 인물상이라서 마냥 징그러웠다. 여자를 그렇게 패며 살아왔으면서도 현재시점 인터뷰에선 나이먹고 비실거리기 시작하니까 자신을 "온순한" 사람이라고 자칭하는데 너무나도 흔한 현실 쓰레기남의 모습을 토 나올정도로 리얼하게 표현해서 고통스러웠다.
그리고 션이 모든 사건의 발단이었던, 토냐를 향한 협박편지마저 자신이 썼다고 자백하던 씬에서는 모두가 나를 무시하지만 사실 나는 모든 상황을 통제하고있다고 염병을 떠는데 너무 혐오스럽고 소름이 끼쳤다. 진짜 남들은 나를 찐따로 보지만 사실 나는 대단한 사람이고 어쩌고하는 조커식 인셀 번탈남들의 전형이다. 심지어 자신이 여러나라에서 방첩임무를 수행한 전직첩보요원이라는 망상증에다가 두뇌의 존재 유무가 의심되는 수준의 멍청함까지... 이런 인간들은 어떻게든 남의 인생을 조지는구나. 그게 총기난사가 되든 시키지도 않은 사주폭행이 되든 말이다.
그 외에도 제프가 션의 집에서 토냐랑 통화하려고 재발신할때마다 지들이 직접 걸어가서 걸면 될걸 션의 엄마한테 고래고래 소리질러가면서 대신 시켜먹는거나 관계의 끝은 남자가 내야한다면서 밤새 운전까지 해가며 토냐한테 가서는 한다는게 뻐큐 한마디 내지르고 꺼지는 꼬라지하며 정말 여러모로 내 안의 폭력성을 일깨우는 장면이 너무 많았다.
토냐가 제프의 총에 맞아 피를 줄줄 흘리고있는데도 총과 술이 있는 현장을 무시하는 경찰이라던가 언론에 내보낼 꺼리 하나라도 더 건지겠다고 토냐의 차를 펑크내고 견인해가는 언론이라던가 토냐를 둘러싼 직간접적인 상황들 모두가 환멸스러웠다. 토냐를 학대했던건 비단 엄마와 남편 뿐만이 아니었던거다. 어느 시대든 잘난 여자의 인생을 망쳐서 그 고통으로 돈을 버는 사람이 너무 많다.
토냐의 엄마도 경멸스러운 인물상이었는데 토냐가 화가 났을때 실력이 잘나온다며 돈주고 사람 매수해가면서까지 토냐를 욕하게 하고 직장에서 욕하고 고집부려가며 토냐의 경기를 본다던가 이것도 모성이라고 할 수 있을까 녹음기 챙긴거보면 이걸 모성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 복잡한 감정이었다.
아무튼 엔딩에서 격투기선수로 전향한 토냐가 피떡이 되어서도 넉다운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는 장면은 토냐가 겪어온 인생의 굴곡에도 불구하고 계속 살아가는 모습을 시각화한것 같아서 좋았다. 실제로도 토냐는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는 실제 사람일테니까... 마치 어떤 분야에서 날리던 사람이 그 분야에서 퇴출되면 인생도 끝나는듯이 여겨지고는 하는데 어떻게든 삶에는 여러가지 길이 있다는걸 보여주는 엔딩이라서 아이러니하게도 희망차게 느껴졌다.
핸드메이즈테일4를 보고 맥케나 그레이스라는 배우가 너무 강렬해서 아이토냐에도 나왔다길래 본건데 어린데도 연기를 너무 야무지게 잘한다. 근데 마스크가 워낙 강렬해서 누구의 아역을 해도 성장판 배우와 동일인물 설정이라는 것에 영 몰입이 안된다.